[Interview] 조종암 “혼창통 정신으로 열정을 갖고 몰입하라!”

“혼창통 정신으로 열정을 갖고 몰입하라!”

명확하지 않더라도 강렬한 꿈 가져야 … 나만의 행복했던 ‘경험’이 중요

조종암 씨는 1965년 경북 안동 태생으로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포스코 정보시스템부 입사와 함께 포항공대 정보통신대학원에 입학하여 소프트웨어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포스데이타와 한국오라클을 거쳐 프리랜서 DB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지난 2001년 ‘엑셈’을 설립해 현재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2011년 중소기업인 혁신대회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2006년 정보통신부장관상을 각각 받았다. 2012년에는 GWP코리아 주최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선정될 만큼 엑셈은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 시절, 경영학과 경제학과에 개설된 계량경영학과 계량경제학을 수강할 만큼 이론 학문에 흥미를 느끼던 중 컴퓨터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대학 4학년 때부터 컴퓨터공학과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수강하는 등 IT 분야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질을 살리기 위해 IT 업체에 입사했고, 거기서 DB의 매력을 발견한다. 한국오라클 입사 후 3년만에 DB 전문서를 내고 이듬해에 프리랜서 DB 컨설턴트로 독립하기까지 DB 분야에 몰입하는 열정을 쏟았다. 영역을 넘나드는 독서와 성찰, 실천을 통해 DB 전문가로서, 경영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존경 받는 삶을 살고 있는 조종암 씨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및 정리: 박세영 글봄크리에이티브 [email protected]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과 ‘창업 10주년 기념여행’ 등 눈에 띌 만한 엑셈의 뉴스로 인터뷰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조종암 대표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약속 시각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급하게 뭔가를 작성하던 중이었는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불과 1~2분이었지만, 이런 짧은 시간도 인터뷰자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집무실 곳곳을 살펴보면서 인터뷰 대상자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튼튼한 슬라이딩 책장에 꽂힌 적지 않은 책들이 단번에 그가 다독가임을 말하여 주었다. 그 전에, 책꽂이 앞에서 자세를 취한 그의 인터뷰 사진을 몇 번 봤기에 인터뷰 중에 ‘책’ 이야기가 나올 걸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자연과학-철학-예술-경제-자기계발 분야까지 수많은 책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눈길을 끄는 것 하나가 더 있었는데, 책장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놓인 오래된 흑백 단체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행복

1927년 8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국제물리학회 참석자들의 사진이다. 사진의 주인공 29명 가운데 17명이 노벨상을 받음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모임으로 남게 되었다. 늘 생각하게 하는 사진이라서 눈에 띌 만한 곳곳에 붙여두거나 세워두었다. 가족은 물론, 직원, 지인들에게 여러 장을 선물했다.

[그림 1] 1927년 솔베이 국제물리학회 모임 사진. 앞줄 가운데에 아인슈타인의 모습이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을 만한 이 모임은 양자역학에 대한 토대를 명확히 하였으며, 이 토론에서 주축이 된 인물은 아인슈타인과 보어였다. 이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반대하며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는 말을 남겼다. 이에 보어는 “아인슈타인, 신에게 명령하지 말게나(Einstein, stop telling God what to do.)”라는 말로 답하였다.

[그림 3] 마인드맵으로 정리한 경영 키워드와 사진 등으로 빼곡히 들어찬 조 대표의 집무실 벽면.

인생이란 ‘행복할 확률을 높이는 과정’이라고 본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이런 과정을 거쳐 진화한 결과다. 우리가 정규 교육을 받았다면 ‘진화론이 옳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단일 세포에서 인간으로까지 진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은 매우 성공적인 존재다.

더 강하고 유리한 상황으로 가기 위하여 세포가 진화한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행복 추구는 본질적이다. 나는 로또 복권을 사거나 카지노에 가지 않는다. 이것도 확률 때문이다. 1000원짜리 복권은 운영사 측의 관리비로 절반이 나가고, 나머지 500원을 한두 명에게 몰아주는 형태로 운영된다. 그것은 성공할 확률이 낮은 게임이다. 다만 당첨됐을 때의 이미지가 너무 강조되다 보니 여기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친구들과 놀이 삼아 한두 번 사본 적이 있어도 개인적으로는 사지 않았다. 의미도 없다. 이런 확률에 기대는 것 자체가 시간과 인생의 낭비다. 반면에 훨씬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게 있다. 로또 복권 살 시간에 책 한 줄을 더 읽고 고민하는 게 내가 더 행복해지고 성공할 확률이 올라간다. 자본주의적이고 경제 지상주의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이게 나의 차별성을 높여주는 것이고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 주는 바탕이 된다. 이걸 ‘행복’이라는 단어로 버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행복도 행복 가운데 하나다. 신이 아닌 나약한 한 인간이기에 말이다. 이런 ‘경제적인 행복’을 남과 나눌지, 독점할지에 따라 착한 행복이냐, 남들을 따돌린 나만의 행복이냐로 갈린다.

나의 인생관과 행복관, 경영관은 뉴턴(Isaac Newton) 우주론의 잣대에서는 나올 수 없다. 뉴턴의 우주론 차원에서 보면 아주 기계적 경영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관점에서 세계를 보면, 내 행복의 가능성과 과정에서의 점진성과 지속적 동기부여 등이 이뤄진다. 뉴턴의 이론은 일종의 설계 개념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창조론에 따라 세계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게 돼 있다고 보는 이론이다. 더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을 더하기 빼기로 계산할 수 있다고 본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으로 들어가면, 우주는 기계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철학이 된다. 참고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뉴턴의 역학은 단순 물리학 이론이 아니라 세계관이다.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이 투영된 세계관 말이다.

열정과 열망

신입 사원들에게 하는 얘기 하나가 있다. 바로 ‘열정’이다.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사람에게는 ‘때’라는 게 있다. 물론 그때를 넘어선 사람도 있지만, 적절한 때에 노력해야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인생이란 확률이다. 기회주의적 의미의 확률은 아니다. 인생이란 자본주의적 성공 쪽으로 나아가는 게임, 즉 ‘행복할 확률을 높여가는 모든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40대에 100억 원대의 자산가 되기’ 같은 바람이나 ‘장기적인 비전’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꿈은 명확하지 않더라도 강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력적인 여인과 황금빛 노을이 물든 멋진 휴양지의 해변을 함께 걸어야 나는 행복할 것’이라는 꿈처럼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비디오 영상처럼 머리에 펼쳐지는 그런 꿈이 있어야 한다. 

스승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제자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스승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스승은 성공할 수 있는 ‘기회’ 또는 내게 수없이 다가오는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내게 꿈이 없으면 그런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는 사람만이 스승이 아니다. 길에서 잠깐 인사를 한 그 사람이 내게 스승이 될 수 있다. 내가 목말라하는 분야에서 그 사람이 전문가라면, 그가 내게 스승이 된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스승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제자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런 스승이 생길 수 없다.

하나 더, 제자인 마음이 무엇일까? 모호하지만, ‘내가 무엇을 배우겠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일종의 비전이 아닐까 한다. 그걸 구체화할 필요는 없다. 내 안에 제자이고자 하는 마음을 키우려면, 모호하더라도 강렬한 희망 같은 것들이 항상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순간마다 이것에 대해 생각할 수 없고, 이리저리 휩쓸리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유혹에 빠지더라도 돌아올 수 있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힘은 내가 가진 희망과 꿈이다.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데, 이게 정말 중요하다.

사람이 크면서 마약이나 술, 담배를 하고 거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가정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그것이 단지 추억으로 끝난다.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탐닉하는 사람은 성장환경에서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거친 친구들과 어울린 후 집에 돌아와 내 미래를 위해 ‘이래선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결국, 한때의 일탈이 추억으로 끝나고 자신이 집중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제자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에게 제자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가 보인다. 그것은 드러내놓고 ‘겸손한 자세로 적극적으로 배우겠다’거나 ‘시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하고 말함으로써 드러나는 게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데, 그것이 열정이고 열망이지 않을까 한다. 어떤 꿈이나 열정을 가진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지금은 평범해 보이더라도 내가 이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뭔가 강한 느낌이 전달돼 온다.

엑셈 지원자의 조건도 남다를 거 같다.

세상에 나가 일을 하고 직장에서 뭔가 하려고 할 때, 원점부터 배워도 된다. 뭘 갖췄는지 흔히 말하는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스펙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은 경험이다. ‘제자의 마음’을 가졌던 그 경험! 직원 채용 인터뷰 때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무엇이었나?’ 하고 물어본다. 경험을 가진 사람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내가 뭔가를 결심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냈더니 행복해지고 주변에서 나를 인정해주더라.” 하지만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보통 “가족과 있을 때 행복했다”거나 “친구들과 정을 나눌 때 좋았다” 등 매우 일반적인 답이 나온다. 반면 “악기를 배워 여러 사람 앞에서 능숙하게 연주해냈을 때 뿌듯함과 행복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와 같은 구체적인 답을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스펙이다.



부모나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운동을 좋아해 일정 수준에 오르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행복감을 느껴본 사람들은 뭔가 해낼 수 있다. 이게 매우 중요하다. 천편일률적인 얘기 대신에 특이한 성취감을 얘기하는 것을 눈여겨 보게 된다. 사회가 스펙을 요구하는 것도, 소위 일류대 나온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공부 과정에서 이런 행복감을 경험한 것에 대한 인정이 아닐까? 직장 생활에서는 직원으로서, 팀장으로서, 대표로서 인간관계 등 다양한 요소를 갖춰야 한다. 따라서 특출한 자질 하나가 한 사람의 가치를 좌우할 수 없다. 하지만 한창 배우고 실무를 처리해야 할 때는 ‘성취감’을 맛봤던 스펙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무엇인가를 올곧게 하여 얻은 성취와 행복했던 스펙, 나는 이것이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도 얘기한다, ”무엇인가 하고자 했을 때 그 순간의 결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아빠가 어느 순간까지는 옆에서 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너 스스로 깨달아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공부만은 아니다. 운동이나 악기를 배우거나 그것도 안 된다면,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가 되거나 반장을 하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능력이다. 경험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열정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말만 놓고 보면, 매우 건방진 표현이므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반에서 15~20등 하다가 기적적으로 전교에서 1등을 하였다. 5~6년간 계속 전교 1등 언저리에서 머문 것은 열정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부모님의 재촉도 있었지만, 내가 머리가 안 좋은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때 이걸 하면 더 행복해질 많은 기회와 선택들이 내게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행복으로 가기 위한 기회들이 내게 덜 노출된다. 대학에 다닐 때, 성공한 부모를 가진 학우들이 주변에 많았다. 따라서 거기서는 중간만 해도 성공의 기회들이 내게 많이 노출될 수 있었다.

“본질이 무엇일까?”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 시작 부분에서 ‘전쟁의 본질’에 대해 정의한 것을 보면서, ‘인생의 본질’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 이후로 ‘본질이 무엇일까?’ 하는 키워드를 화두로 항상 갖고 있었다.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판단해야 할 것의 연속이다. 여기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럴 때는 내 기준이 무엇인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기준이 개인적인 일을 처리할 때와 회사 일을 할 때 각각 달라진다면, 이기심을 떠나 일관성이 떨어지고 만다. 취미 생활이나 조직 관리가 다르지 않았다. 인생은 행복해질 확률을 높이는 과정이라 했듯이, 기업이 행복해지려면 많은 이익을 내서 조직원이 행복해져야 한다. 기준이 있으면 회사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하거나 영업 및 마케팅 전략을 펼칠 때 선택이 명확해진다. 우리 회사와 파트너가 함께 행복해야지 어느 한 편으로 쏠리면 절대 행복하지 않다. “어떻게 직원들의 다음달 월급을 맞춰 줘야 할까?”를 놓고 늘 걱정하다 보면 사람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다.

한 조직의 대표이므로 나도 직원들이 형처럼, 삼촌처럼 따라줄 때 가장 행복하다. 그 기준이 뭘까? 나만 행복하면 지속성이 떨어진다. 개인, 가족, 조직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골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내가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주변 사람에게 밝은 얼굴, 행복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나?

산에 오르거나 사진을 찍을 때도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 우리 회사와 거래처나 고객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밖에서 하는 일이나 취미 생활도 회사나 가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면, 즉 나만 행복하면 지속성도 탄력도 떨어진다. 내가 연속적으로 하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고, 남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 나만 행복하고, 이기심이 개입되면 남에게 자랑도 못 한다. 그러면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개방적 사고를 하려고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내가 하는 일, 관심거리, 심지어 정치적인 견해까지도 터놓고 올린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신 위주의 생각을 하는 게 어느 정도 팽배해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인지하든 못하든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있기에 정치적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일반 시민도 분명한 정치적 견해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같다. 인간의 뇌는 명확한 것을 가지려 하므로 모호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마련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모호하면, 인생을 살아가기가 매우 힘들다. 주관이 뚜렷해야 내가 살아가기 편하다. 

인간 역사는 내 편을 늘려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야 인생이 편해진다.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왜 정치적으로 명확한 견해를 가지려고 하고, 종교에 빠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찾다 보니 뇌과학에 이르렀고 박문호 박사를 알게 됐다. 뇌는 기나긴 인간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자연과학을 인문학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경로가 뇌과학이다. 그래서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www.mhpark.co.kr)’을 회사 차원에서 후원하고 있다.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

여기까지가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여러 가지 것 중에서 선택해온 결과들이다. 내가 책 읽고 산에 가고 사진 찍고 하는 모든 것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결과다. 앞서 얘기했듯이 사진 찍기도 경영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아름다운 자연에서 뭔가를 포착하려고 하고,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보려고 하는 것이 경영과 관련이 있다.

경영이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듯, 인생 또한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과정이기는 마찬가지다. 비즈니스 모델, 즉 돈이 되는 것은 무질서 속에서 프로세스를 찾아 질서를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이다. 혼란 속에서 정교하게 프로세스화해야만 이게 곧 시스템이고 이것을 프로그램화하면 소프트웨어 상품이 된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보려 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사실 경영이고 인생이고 진화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함은 본능에 매우 충실함이 된다. 사진을 하면서 이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평범한 장면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려는 노력은 모든 것에 본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사진을 보는 사람은 그 의미를 발견 못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평범함 속에서 질서와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려고 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도시를 관찰하면 재미있겠다’ 하는 통찰도 얻을 수 있다. 모든 것은 카피이므로 말이다. 카피가 창조의 어머니다. 카피하다 보면 충돌이 발생하고 충돌 속에 새로운 창조가 나온다. 이 차원에서 많이 보고 많이 읽고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 매사에 사물을 색다르게 보려는 자세가 곧 창조의 밑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이 굉장히 좋다.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자신의 정신 순화에도 좋다. 내 눈으로 본 도시를 찍기 위하여 산에 갔는데 산 자체가 주는 매력을 알게 됐다. 산의 기운과 산의 냄새에 휩싸이면, 어머니 품 같은 아늑함과 고요함이 느껴진다. 산 안에 들어가 있는 거 자체가 좋은 거다. 그래서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거기에 있다 보면, 말 그대로 순수함이 느껴진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힘이 사실은 인생이고 사업이다. 

선문답 같기도 하다.

매우 본질적인 게 관련돼 있다고 느껴지지 않나? 나는 피부로 절감할 수 있다. 사업을 하면서 전략, 조직 관리, 웹이나 블로그 콘셉트 등은 내가 연습장에 직접 그리고 메모한 결과들이다.

그래서인지 엑셈의 웹과 블로그에서는 많은 정성이 느껴졌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바로 이거다’ 하고 공감했던 <혼창통>의 개념을 적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혼은 열정이고 ‘창’은 뭔가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통’은 그것으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반복적으로 행복이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사진이나 그림, 독서 등 분야를 넘나들며 다분히 끼를 발산하는 사람은 하나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DB 영역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를 넘어서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힘이 놀랍다. 그게 바로 엑셈의 인재상인 아티스트인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내가 전문가(Expert)라고 생각했다. 예술가(Artist)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업을 하다 보니 ‘아~ 경영도 예술이구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됐다. ‘여러 가지 중에서 이게 가장 낫겠다’는 것이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기계적으로 경영하고 내가 사장의 모습으로만 있었다면, 이렇게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해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는 나의 모든 것이 회사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이게 더 낫겠다’는 게 보이고 느낌으로도 온다. 그런 것들이 내게 뿌리 내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앞서 얘기한 행복해지기 위한 확률을 높이기 위한 것도 일종의 ‘혼창통’이다. 혼창통이 없으면 뭘 하더라도 동력이 떨어진다. 자, 공부를 한다고 해보자. 조선일보의 이지훈 기자가 쓴 <혼창통>을 보고서, 내가 이런 세 가지 개념을 갖고 있었는데 책으로 벌써 나왔구나 하고 놀랐다. 읽어봤더니 내 생각과 거의 일치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하고 혼란스러워졌는지를 알 수 있다. 소위 주류 세력들은 ‘혼’과 ‘창’은 있지만 ‘통’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주변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회에 공헌하겠다”고 하는, 소위 공명심을 가진 사람을 보아왔다. 지금은 모르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사법시험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공으로 들어가는 등용문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혼, 즉 열정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창은 창조적 공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합격의 공부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창이라 할 수 있다. 나머지 통이 문제다. 정치 검찰을 봐라. 자신의 재주를 사회에 환원하고 존경도 받고 명예심을 갖는 데서 멈춰야 하는데, 권력과 돈까지 추구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사회의 주류 세력들은 ‘혼창통’의 정신이 부족하다고 본다. 통이라는 개념은 매우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개념이다.

같은 책을 보고도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을 사람도 많지 않았을까.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슴이 움직여지는 스토리를 가진 성공한 사람들은 혼창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성공을 보고서, 부럽지만 마음에서 따뜻함이 일어나지 않으면 대부분 ‘통’의 결핍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열망과 비전을 위해 열정을 다했다면 혼이 있었다는 말이고, 창을 갖고 접근하였기에 남들이 가치를 인정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통이 없다면, 형식적이거나 진심이 없어서 존경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혼이나 창을 추구하면서 통이 스며들 수 있게 해야 한다. 

어떤 제품에 통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내 주변의 제품들에서 혼창통을 느낄 수 있다. 혼을 다하지 않았다면 제품으로 나올 수 있었겠나? 창이 없으면 불법적인 방법을 이용해 일단은 시장에 진입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태로 접근하면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나중에 범죄자로 몰리거나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통이 있어야만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회사에서 써봤더니 무척 유익했다’면 그 제품에 통이 있는 것이다. 내가 만든 제품으로 다른 집단에 가치를 부여해준 것이다. 우리 제품을 도입한 고객사에서 시간을 절감해 본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것이 수익성 올리기로 연결됐다면 통을 이룬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제품을 설계할 때, 이 통을 보려고 한다. 혼창통 없이 제품을 만들어 성공하는 회net/publishing/img/knowledge/dbin_148.jpg”>

대부분 성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였다. 스스로 노력한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처지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그 부분은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약간 늦었지만, 좋은 선택을 하여 여기에 왔다. 세월을 보낸 후에야 이런 깨달음이 온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때는 비전이나 욕망의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라면 10년 후에 연봉 2~3억 원이나 10억 원을 받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50대에 이런 비전은 덜 현실적이지 않나? 그것보다는 ‘내가 열심히 일하여 자식들 결혼시키고 용돈을 벌 만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수준에서 할 수 있다. 사실 행복이라는 것도 욕망의 높이에 따라 결정된다. 나이에 맞는 욕망을 갖는 것이다. 나이 50이 넘은 사람이 20대에게나 어울릴 만한 비전이나 꿈을 갖고 있다면 보기 흉하다. 그런 꿈을 이룬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그것을 보라는 듯이 사회에서 부추기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1만 명 가운데 한 명이나 할 수 있는 것을 나머지 9999명에서 모두 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 사회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욕망의 크기를 낮춰서 행복을 찾아가려고 하는 게 좋다. 나이와 세대에 따라 그때그때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협이라는 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매일 동기부여가 돼야 하는데, 그게 너무 높다 보니 매번 헐떡거리다 작심삼일로 끝나버린다. 그러면 좌절감에 빠지게 되고, 남을 속이는 등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살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 사지 멀쩡해서 조금만 일하면 내가 먹고 사는 데에 문제는 없다. 내가 먹고 살 수 있다면, 따뜻한 햇볕 아래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인간적으로 아주 소박한 행복으로 가야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게 못하기에 사회가 높은 꿈 위주로 강조한다. 자본주의적, 경제 지상주의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사기 행각이 범람하는 것은 자기 나잇대에 맞는 성공의 기준을 가져야 하는데, 10대 때에 바랐던 물질적 욕망을 40대 50대에서도 터무니없이 가졌기 때문일 수 있다.

‘20대 때에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을 찾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여러 번 실수하여 찾은 결과다. 내가 찾은 것은 딱 두 가지다. 내게 그런 ‘열망’이 있으면 올곧게 승부를 겨루어 무엇인가 남다른 성취를 하기 위해 ‘몰입’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짧은 시간 안에 빨리 성취할 수 있는 그런 분야여야 한다. 나는 공부에서 그런 경험이 있었다. 중고등학생 때, 압축해 공부해 남들과 차별화해 봤던 경험이 있다. 내가 잘하는 게 뭘까? 나는 성격이 급하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빠르게 재충전 돼야 한다. 그래야 몰입하게 된다. 여러 분야를 바라보다가 오라클 DB에서 그것을 찾았다.

어떤 계기로 DB와 인연을 맺게 되었나.

이 질문을 받으면 참 막막해진다. 내가 잘할 수 있었던 일은 혼자 앉아서 집중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오라클 DB였고, 빨리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래서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한국오라클에서 근무 3년 만에 관련된 책을 썼고, 4년 근무하고 나와서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사업 밑천까지 마련했다. 몰입의 결과가 책으로 나왔고, 금전적 혜택으로도 되돌아왔다. 당연히 컨설팅을 하다 보면, 프로세스가 생긴다. 어떻게 하면 이걸 시스템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걸 프로그래밍하였는데 그게 지금의 맥스게이지(MaxGauge)다. 엑셈의 매출액 120억 원 가운데 100억 원이 이 맥스게이지에서 나온다. 내가 4~5년 동안 그렇게 집중적으로 한 것으로 먹고사는 것이다. 이 정도는 어떻게 하다 보니까 된 것이 아니라, 내가 몰입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룩한 것이다. 그래서 이 질문을 받으면 참 막막해진다. “행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소질에 맞는 무엇을 찾아 나섰다가 오라클 DB를 발견했다”가 답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행복을 높이는 방법으로서 로또복권이나 카지노 게임보다 더 확률이 높은 것을 찾아냈고 몰입을 통해 이뤄냈다.

DB의 어떤 측면이 그렇게 좋았나.

오라클 DB는 매우 지식 누적적이다. 와해성 기술이 아니다. IT를 들여다보면, 항상 유행을 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4세대 프로그래밍 언어를 열심히 공부해 전문가가 되었는데, 갑자기 자바 언어가 떠올랐다고 해보자. 4세대 언어 지식이 프로그래밍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자바에 능숙해지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언어가 출현함으로써 내가 쏟아온 노력의 결과가 무너져버린다. 반면, DB 엔진이나 DB 기술은 매우 지속적이다. 내가 지속해서 공부하면 내게 스며들고 녹아 들면서 점점 누적된다. 세월이 지날수록 나에게 지식이 쌓이는 반면, 새로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진입 장벽이 된다. DB 분야의 지식은 매우 견고하게 잘 정리돼 있다. 나처럼 앉아서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딱이다’. 반면 다른 분야, 즉 프로그래밍 등은 경험자나 전문가를 찾아 다니며 계속 물어봐야 실력이 올라간다.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오라클 DB를 처음 봤을 때, 6개월만 진득하게 앉아서 몰입하면 뭔가가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으로 오라클 교육센터에 갔더니 커리큘럼이 확실하게 갖춰져 있었다. 이 커리큘럼을 따라 교육을 받고 스스로 공부하면, 일정한 성취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라클 DB를 선택했다. 다시 말하여, 단기간에 습득하여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스스로 동기부여도 받고, 남과 차별화해 연봉이든, 미래의 가능성이든 더 높은 기회에 자신을 스스로 노출시키려 했다.

DBMS 벤더의 순위가 20년 넘게 흔들리지 않고 있는데, 이미 성숙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RDBMS는 지금까지 40년 넘게 발전해왔다. 객체지향 DB가 나와도 RDBMS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 빅데이터가 나오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형화된 데이터가 많은 상태에서는 RDBMS가 답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10~20년까지는 꾸준히 쓰일 기술이다. 초기 기본 기술이 계속 누적되고 있다. 요즘 일반적인 오라클 11g나 12c도 1994~1995년 사이에 나왔던 오라클 7.x 버전의 애드온 형태라고 본다. 딕셔너리 구조는 20년 전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그걸로 먹고사는 것이다.

DB를 본질적인 분야로 받아들인 것인가.

맞다. 나는 어떤 분야를 하든지 자꾸 본질이 무엇인지 파고들어 간다. 밑에서 동작하는 것이 계속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DB가 가장 밑바탕에 있으니, 데이터를 저장해놓고 나면 모든 게 시작이다. 은행 온라인 업무도 밑에 있는 데이터를 꺼내고 업데이트하는 과정이지 않은가? 결국 데이터베이스 조작은 어떻게 하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지? DB에서 데이터를 꺼내와 인덱스를 쓸 때 어떻게 하지? DB 파라미터가 이렇게 됐을 때 어떻게 되지? 메모리 구조가 이렇게 됐으니 퍼포먼스가 조금 떨어지겠네? 등이 궁금했다. 베이스 컴포넌트라는 점 때문에 DB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가장 밑바닥을 하다 보면 애플리케이션으로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놓게 됐고 지금까지 꾸준히 키워왔다. 이제 엑셈은 애플리케이션의 엔드투엔드를 다 하므로?생관은 나 자신뿐 아니라 회사 경영, 비즈니스 모델 구조까지 같다. 따라서 앞으로 실타래처럼 풀어나갈 것이다.

스스로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런 성격이 비즈니스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는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이성 지향적인 사람(에니어그램 기준으로 머리형)은 앞서 말한 ‘통’이 닫혀 있기 쉽다. 엑셈은 매우 감성적이다. 나는 매우 예민하고 섬세하게 조직을 관리한다. 그런 면에서 엑셈은 남다른 데가 있다. 더불어 엑셈은 과일 먹는 회사로 소문이 났다. 직원들이 집에서는 과일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에서 최고의 과일만 먹기 때문이다. 이런 게 감성경영의 일환이다. 요즘에는 내부지향적인 게 당연히 모든 조직관리에도 맞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보다는 내성적이고 어머니 같은 지도자가 훨씬 더 맞다. 아주 알토란 같은 기업들 가운데 내부 지향적인 곳이 많다. 이런 기업들이 비즈니스나 영업도 잘한다. 어느 회사가 굉장히 독특하게 가는 회사가 있다면, 그 사람도 나 같은 사람이지 않을까(웃음).

직원을 채용할 때도 성격을 가려서 하나.

어떤 성격이든 괜찮다. 성취에 대한 열망, 전문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주로 본다. 앞서 얘기한 “행복한 경험”이라는 스펙을 본다.

DB 분야에서 엑셈, 엔코아 같은 벤처기업이 추가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다소 절망 섞인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도 봤다.

DB 분야는 경험 누적적이고 지식 누적적이기 때문에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진입 장벽이 만들어진다. 더불어 RDBMS 분야 자체가 40년 이상 발전해오면서 매우 안정된 영역이 되었다. 따라서 엑셈이나 엔코아 같은 회사는 어느 순간 뚝딱 만들어질 수 없다. 이 분야에서 전문가로 통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수준이 높다. 소위 족보가 있다. 경험-지식 누적적인 DB 분야의 특성에 고객 경험까지 더해지면서 자동으로 장벽이 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DB 분야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벽처럼 느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이화식 엔코아 사장님의 강의를 들으면 평범한 개발자든 DB 엔지니어든 벽이 확 느껴질 것이다. 너무 수준이 높아서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그 단계까지 가기에는 내게 많은 세월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스스로 들 수밖에 없다.

책을 많이 읽는 CEO로 알려졌던데.

인생의 본질과 경영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면서 자꾸 책을 읽게 됐다. 원칙이 여러 가지다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게 되고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다. 일관성을 가졌을 때 행복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산에 오르는 게 결국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경영자라면 누구나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본질적인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독서를 하다 보니까 어떤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회의할 때나 다른 일을 할 때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 사람이 뭐가 부족하구나’ 하는 게 보였다. 그걸 이유로 그 자리에서 바로 잡으라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 ‘저 친구를 이렇게 지도하여 바로 잡아 회사 분위기를 바꿔야지!’ 하면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어느 한 사람이 분위기를 흩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의 때나 특정한 자리에서 분위기를 잘 파악하려고 한다.

추천하는 책은.

<경영의 미래>다. 출간된 지 2~3년 됐는데 가장 추천하는 책이다. 일반 직장인에게는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와 니콜라스 카의 <빅스위치>를 추천한다. <아웃라이어>는 일반인이 전문가나 예술가가 되려면 가져야 할 ‘1만 시간의 법칙’ 등 여러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빅스위치>는 IT의 흐름의 본질을 진화론 차원에서 파해치고 있다. 인도계 미국 대학 교수인 앨버트 바라바시가 쓴 <링크>와 수전 블랙모어의 <밈>도 좋아한다. <링크>는 SNS 등 IT가 이 시대에 던진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매우 넓은 시각에서 제시한다. 진화론과 복잡계와 관련이 있고, 앞서 얘기한 본질에 대한 논리와도 관련이 있다.

추천하는 독서 방법이 있다면.

독서에도 혼창통이 있다. 혼은 내가 목적의식을 갖고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다. 경영자라면 경영학 책부터 읽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 마케팅 책을 읽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 책을 읽게 된다. 이어서 독서 영역이 인문학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철학 책까지 찾게 된다. 이렇게 ‘혼’을 다한 분야를 중심으로 독서를 하다가 넓어지면서 막 충돌이 일어난다. 내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펼쳐지고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이론적으로, 철학적으로 무장하게된다. 다음에 읽게 되는 책이 사회서적이다. 촘스키 등의 책을 읽게 된다. 다시 말해, 경영학-마케팅-심리학을 읽다 보면 인간의 본질에 대해 궁금해지므로 인문학의 정수인 철학으로 관심이 가게 된다. 17~18세기 철학자들의 저서를 읽게 된다. 사람의 생각이 뭐고, 심리가 뭐지?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그러면서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이데올로기가 무엇인가? 사회에 대한 진정한 정의는 어떤 것일까? 등 ‘통’이 일어난다. 그래서 독서야말로 혼창통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독서 이력이 혼창통으로 가면, 그 사람은 진정 독서에 빠져 있다고 본다. 왜냐 하면 내가 이기적인 독서를 하면 절대 혼창통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경영학 책만 보겠다고 하면, 아주 전략기획 책, 아주 정형화된 프로세스에 대한 책만 찾게 된다. 그것은 독서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다. 다시 말해 혼만 있는 것이다. 독서의 마니아가 됐다면, 그 사람은 혼창통으로 갔기에 가능한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하는 경영자들은 혼창통으로 가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다. 그러고 나서 자연과학서적으로 들어 갈 수밖에 없다.

뜬금없이 자연과학 서적까지? 왜일까? 경영학 책을 혼으로 시작해서 인문학의 정수인 철학으로 들어가서 다시 사회학 책을 읽게 된다. 이어서 이데올로기 서적이나 철학 책을 읽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이나 구성 원리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이게 진화론과 딱 이어진다. 그러면서 <링크> 같은 진화론 기반의 책으로 가면, 자연스럽게 자연과학의 본류와 이어진다. 뇌과학 전에 진화론 책을 읽으면, 생명 이전의 진화는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우주로 관심이 가게 돼 있다. 이렇게 양자이론과 빅뱅이론에 들어간다. 이렇게 들어가질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독서를 많이 하면 우주론 책을 읽게 돼 있다. 물리학과에 들어가서 상대성이론을 배우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먼 길을 돌아서 필요에 따라 이 이론을 찾아온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뉴턴의 역학은 단순 물리학 이론이 아니라 세계관이다.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이 투영된 세계관이다. 뉴턴의 우주론 차원에서 세계를 보면 아주 기계적 사고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으로 들어가면, 우주는 기계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20세기의 합리주의나 이성주의는 사실 뉴턴의 우주론에 가깝다. 하지만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현대 문명은 양자역학 이론이 없으면 절대 나올 수 없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면 중용적이고 탄력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본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서 얘기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인문학적으로 보면 양자역학 이론이다. 전통적인 전쟁론은 뉴턴의 이론이다. 전쟁이 터지등을 지휘하지만, 전장은 군인들의 사기, 날씨, 상황, 직전 전투의 상황에 따라서 승패가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실제 전장 밖의 지휘소에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승리했다. 나폴레옹은 현장에서 판단하여 매번 뒤집었다. 그게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하느님이 설계한 대로 진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는 매 순간 환경 속에서 적합한 자가 생존하는 게임이다. 우성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열성이지만, 급변한 날씨나 환경 등에 적합해 우성을 이긴다. 결국 우성은 죽었으므로 유전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차선의 인자들이 살아남았다. 어찌 보면 경영도 최선의 경영이 아니라고 하지 않은가? 내가 최선을 따지면, 특정 사람들만 이기게 돼 있다. 조직을 전체적으로 여러 분야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보기에는 차선인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로 불만이 사라지게 되고 열심히 일하면, 최상을 선택했을 때보다 좋은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가치는 이것이다. 하지만 뉴턴의 이론으로 하면 이렇게 접근할 수 없다. 다시 말하여 항상 최고가 이긴다고 보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 무엇 때문일까? 바로 상호작용 때문이다. 모든 객체들은 상호작용을 일으켜서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설계론이나 창조론은 상호작용을 무시한다. 모든 것을 객체로 놓고 그 객체를 최적화하는 형태로 접근한다. 큰 조직도 작은 조직에서 변화가 일어나 커진 것이다. 작은 조직들이 부딪치며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되고, 그 상호작용에 따라서 다른 결과가 자꾸자꾸 파생된다. 이것이 바로 네트워크 이론이다. 진화나 현재 사회의 이론이 사실 네트워크 이론이다. 이걸 다시 말하려면 몹시 어려울 것 같다. 여기까지 한 얘기가 우주론과 세계론과 문명론과 인생론과 기업 경영론이 다 섞여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으로 빅데이터 현상을 풀어본다면.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현재 세계의 작동원리가 그것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과거 18~19세기는 기계화 및 산업화 시대였다. 컨베이어 밸트라는 기계에 의해 인간도 움직였다. 인간도 기계의 일부처럼 일해야 했다. 그런 삶에서는 상호작용이 결부돼 있었다.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라야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수히 많은 상호작용을 한다. 빅데이터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스마트폰에서 농담이나 잡담한 것까지 마케팅 정보로 잡겠다는 시도다. 빅데이터는 예전 데이터 수준이 아니다. 데이터가 몇천, 몇만 배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인문학보다 자연과학을 강조하는 이유.

인문학보다 (자연과학이) 더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우주관이고 세계관이므로 그것을 볼 수 있는 공부를 하여야 한다. 이 물질의 세계가 어떤 식으로 동작하고 있는 지 모르고 접근하면 사상누각을 쌓는 것이 되고 만다. 결국은 자연과학 책으로 가야 한다. 현재의 인문학의 붐은 잘못된 것이다. ‘자연과학 책이 아닌 인문학 책, 즉 철학 책을 읽어라’ 하는 말은 요즘 관점에서 보면 옛 선비들의 주장일 수 있다. 물론 옛날 우리 선비들은 대단한 분들이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예전 선비들이 알았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다. 사실 그것이 구슬처럼 꿰어 있지 않아서지, 대학 졸업할 수준이면 예전 선비 몇 백 명이 갖고 있던 지식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자이지 않았나? 수학은 자연과학의 본류다. 인문학의 붐, 철학의 붐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잘 볼 필요가 있다. 조금 비약한다면, 현재의 주류 세력들, 즉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통과한 법관들이나 행정관들이 인문학 책을 보면서 인간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여 사회 정의를 이루고 사회 혼란을 막아야겠다는 주의(主義)로 본다. 근본적인 인문학은 자연과학이다. 그래서 우주론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요사이 <혼창통>이 인문학에 머물라는 게 아니라 자연과학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 인문학이라면 인간사 이후의 어떤 것에 대한 얘기다. 우리 인간사는 우주 역사의 0.1%도 안 된다. 현대 과학이 풀어놓은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다. 그런 우주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우주 속, 태양계의 지구에 있지 않은가? 그 세계를 공부함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어떤 기계처럼 맞춰놨고 뉴턴의 이론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통하지 않은 시대에 우리 삶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DB 분야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 거로 생각하나.

그건 잘 모르겠다. 흐름에 따라 내게 가장 적합한 게 무엇인지를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정보시스템부 입사하고 포항공대에서 소프트웨어 석사 과정에 입학한 것도 ‘내가 IT 세계에서 미래의 기회를 포착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결정한 것이다. 거기 가서 공부를 해보니 ‘아, 공부가 어렵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IT 실무 분야에서 어떤 게 적성에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포스코 정보시스템’에서 이거 저거를 경험했다. 그 와중에 포스데이타에서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DB 분야를 발견하였다. 나는 언제나 ‘내가 어떤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영상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을 해서 거기에 도달할 것인지는 항상 가변적이다.

정치외교학 전공인데 컴퓨터와 친해진 배경이 궁금하다.

외교학과를 나와서 당시 기준으로 취업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대학 4학년 때부터 컴퓨터공학과에 가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수강하는 등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논리적인 학문을 좋아한다. 제대하고 복학 후 대학 2~3년 동안은 경제학과와 경영학과에 가서 살았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이 사회과학 중에서도 이론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거기서도 나는 더 이론적인 것을 좋아했다. 계량경영학과 계량경제학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전산소에서 통계패키지를 사용해야 했다. 그때 컴퓨터를 접했다. 정치학과 학부생이 경제학원론이나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을 듣는 게 일반적인데, 계량경제학에 관심을 보였으니 좀 특이한 구석이 있었던 거 같다. 계량경제학 리포트를 쓰기 위해 IBM 메인프레임과 연결된 터미널을 사용하곤 했는데, 그때 PC용 통계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 4학년 때인 1988년에 거금을 들여 PC를 샀다.

그때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했나.

SPSS다. 통계학을 매우 좋아했다. 통계학 강의도 듣곤 했다. 4학년 때 PC를 접하면서 ‘아~ 이게 정말 매력적인 분야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행복으로 가기 위한 도구로서 제대로 한번 공부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조직의 대표라는 타이틀을 떠나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다고 생각해본 것이 있다면.

아, 이 사람 정말 열정적으로 사네! 하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에너지를 최대한 쓰려고 하는 사람, 정말 ‘열정’이라는 코드를 달아줄 만한 사람”이다. (하하하)

인터뷰 후기

조종암 씨는 인터뷰 후 “뭐, 경영자로부터 얘기를 들었는지, 도 닦는 사람으로부터 얘기를 들었는지 헷갈릴지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에 인터뷰자가 ‘다소 철학적 담론으로 흘렀던 부분이 없지 않았다’고 답하자 그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길게 얘기하는 편”이라면서 가끔 신입사원들과 이런 얘기를 한다고 했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이들과 공유할 만한 얘깃거리가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질문하면서 논리적으로 답하는 것을 보고 인터뷰자가 “뛰어난 논리력에 비해 글을 잘 쓰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하자 눈치를 챘는지 박장대소하면서 “왜 그런가?” 하고 물어왔다. 이에 “분석에 분석을 거듭하여 논리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글을 쓰기 위해서 감성의 에너지까지 다 쓰게 될 것 같아서!”라고 답하자, “내가 (여기서) 얘기하고 생각하고 본 것은 모두 쓸 수 있다”고 답했다. 

DB에 대한 얘기보다 행복, 본질, 독서 등 보다 근본적인 주제로 얘기를 풀어나갔지만, 그가 성공한 DB 전문가로서 어떻게 커올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인터뷰였음에는 틀림 없다.

출처 : 한국데이터진흥원

제공 : DB포탈사이트 DBguid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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